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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조건 이란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조선고적조사보고 : 천추총 (도면)

    이미지

    조선고적조사보고 : 천추총 (도면)_1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천추총 (도면)_2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천추총 (도면)_3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천추총 (도면)_4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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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태그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선고적조사보고 #일제강점기 #연구자료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1938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재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재연구원
    공공누리 유형

    국립문화재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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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천추총은 마선구(?線溝)의 하류 동쪽 언덕 가까이에 축조되어 있다. 석퇴(石堆) 사이에 기와 조각이 엄청나게 산재하고 있다.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 「보고건곤상필(保固乾坤相畢)」등의 명문(銘文)을 양각(陽刻)한 전돌(塼)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에 세키노(關野) 박사로부터 이 명칭을 얻었던 것이다. 붕괴의 정도는 대체적으로 태왕릉(太王陵)과 동일한데 비교적 원형을 잘 남기고 있는 곳은 기단(基壇)의 사우(四隅) 및 동쪽의 일변(一邊)이다. 그 사변(四邊)은 거의 방위선(方位線)과 일치하고(정밀하게 말하면 10° 정도 동쪽으로 기운다.) 일변(一邊)의 길이는 190척이 실측된다. 기단(基壇) 중 동남단(東南端)에 대해서 살펴보면 높이가 약 10척이다. 태왕릉과 거의 동일한 구축법이 이용되고 있다. 우각(隅角) 가까이에 2, 3개의 기대어 세운 돌도 잔존한다. 기단의 위에는 본래 6, 7성(成)의 방단(方壇)을 얹고 있었던 것일 텐데 현재 그 형적(形迹)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단지 3단(壇)에 지나지 않는다. 석퇴의 꼭대기 부분은 함몰되고 그 함몰된 곳은 남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것은 아마 석실(石室)이 파헤쳐진 흔적임과 동시에 석실이 그 방면에 연도(羨道)의 입구를 열고 있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총(塚)의 서북쪽 약 반 정(半町) 거리에 이도(異道)에 접해 있었던 민가(民家)의 돌 울타리에 화강석재(花崗石材)의 커다란 초석(礎石)이 기대어 세워져 있다. 팔각형(八角形)으로 만들어진 매우 훌륭한 것이다. 이 민간의 남쪽, 즉 총의 서쪽 일대의 낮은 땅(低地)은 천석(川石)으로 빈틈없이 깔리고 건물의 유기(遺基)인 듯이 보이는 석재도 그 사이에 점재(點在)한다. 틀림없이 천석이 나포(羅布)하는 것은 본래 그 부분이 조역(兆域) 내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곳에는 위의 초석을 이용한 부속 건물까지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일 것이다.

    저작물 설명
    천추총은 마선구(?線溝)의 하류 동쪽 언덕 가까이에 축조되어 있다. 석퇴(石堆) 사이에 기와 조각이 엄청나게 산재하고 있다.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 「보고건곤상필(保固乾坤相畢)」등의 명문(銘文)을 양각(陽刻)한 전돌(塼)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에 세키노(關野) 박사로부터 이 명칭을 얻었던 것이다. 붕괴의 정도는 대체적으로 태왕릉(太王陵)과 동일한데 비교적 원형을 잘 남기고 있는 곳은 기단(基壇)의 사우(四隅) 및 동쪽의 일변(一邊)이다. 그 사변(四邊)은 거의 방위선(方位線)과 일치하고(정밀하게 말하면 10° 정도 동쪽으로 기운다.) 일변(一邊)의 길이는 190척이 실측된다. 기단(基壇) 중 동남단(東南端)에 대해서 살펴보면 높이가 약 10척이다. 태왕릉과 거의 동일한 구축법이 이용되고 있다. 우각(隅角) 가까이에 2, 3개의 기대어 세운 돌도 잔존한다. 기단의 위에는 본래 6, 7성(成)의 방단(方壇)을 얹고 있었던 것일 텐데 현재 그 형적(形迹)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단지 3단(壇)에 지나지 않는다. 석퇴의 꼭대기 부분은 함몰되고 그 함몰된 곳은 남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것은 아마 석실(石室)이 파헤쳐진 흔적임과 동시에 석실이 그 방면에 연도(羨道)의 입구를 열고 있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총(塚)의 서북쪽 약 반 정(半町) 거리에 이도(異道)에 접해 있었던 민가(民家)의 돌 울타리에 화강석재(花崗石材)의 커다란 초석(礎石)이 기대어 세워져 있다. 팔각형(八角形)으로 만들어진 매우 훌륭한 것이다. 이 민간의 남쪽, 즉 총의 서쪽 일대의 낮은 땅(低地)은 천석(川石)으로 빈틈없이 깔리고 건물의 유기(遺基)인 듯이 보이는 석재도 그 사이에 점재(點在)한다. 틀림없이 천석이 나포(羅布)하는 것은 본래 그 부분이 조역(兆域) 내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곳에는 위의 초석을 이용한 부속 건물까지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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